마키아벨리의 <군주론>에는 공화국은 언제나 역동적이고 활기가 넘치는 것이 특징이며, 지배자가 군림하기 어렵다 하고, 더 좋은 삶을 전제군주가 보장할지라도 항상 자신이 자유로울때를 그리워한다고 기술하고 있습니다. 현재 대한민국은 역동적이며 새로운 관점들이 속속 소개되고, 활기가 넘치는 것이 전근대에 비하면 근대국민국가로서 그 의의를 가집니다.
하지만 건국 90년이(임시정부 기준으로) 되어가는 지금, 대한민국 정부가 수립된지 60여년이 지난 지금, 우리는 공화국에 대한 올바른 이해가 자리잡히지 못하고 있다는 것에 주목해야 합니다. 공화국의 건국 주체라는 것이 무엇인가에 대한 고민입니다. 수많은 국부 논쟁이 있고, 김구를 국부라고 논하는 사람과, 이승만을 국부라고 논하는 사람들도 있으며, 그들이 나라를 세운 건국 주체인것처럼 이야기합니다. 이것은 자연스러운 결과입니다. 태조 이성계의 조선왕조, 북한의 김일성, 고구려의 고주몽, 신라의 박혁거세와 같이 이전의 "건국"은 새로운 통치 체제를 설립하는 것으로 정의되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대한민국의 건국도 미/소 분쟁속에서 정치가들에 의해, 독립 운동가들에 의해 세워졌습니다. 이것은 사회 계약에 근거한 것도 아니었고, 엄연히 대한민국은 반대 세력을 물리치고 건국한 정치인들의 고도의 정치 결과물입니다. 그렇기에 건국 90년이 지나는 지금에도 공화국의 진정한 이해가 이 나라에 자리잡고 있지 않습니다.
3.1절의 영향을 받은 한성임시정부, 그리고 대한민국 임시정부
대한민국이 현재 3.1절이 공휴일로 지켜지고 있는 이유는, 바로 3.1절이야 말로 일제 통치 아래에서 억압받고 있던 조선의 인민들이 자주 독립과 근대국가의 창설을 열망하며 일어난 봉기이자 비폭력 저항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이것은 우리 운명공동체의 열망을 확인시켜주는 것이었죠. 그리고 이 사건으로 인해 한성 임시정부가 세워졌습니다. 우리나라 건국의 뿌리가 바로 임시정부여야 하는 이유는 바로 대한민국이 한반도에 살고 있는 사람들이 열망한 것의 결과물이자 한반도의 유일무이한 합법정부는 오직 대한민국 뿐이라는 것을 암시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또한 이것은 이 글에서 말하는 대한민국은 "국민"에 의해서 만들어진 나라라는 것의 중요한 근거가 됩니다. 이러한 열망을 확인하고 독립투사들의 결합으로 창건된 것이 대한민국 임시정부였기 때문이지요.
국부는 누구인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나라의 일부 정치세력은 김구와 이승만을 비롯한 대한민국이라는 정치체제를 실질적으로 창건해낸 사람들을 국부로 모시려고 합니다. 그리고 대한민국의 건국의 공이 자기들 계파 것인것 마냥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흙이 없으면 식물이 없듯이 대한민국의 건국은 민중에 열망에 의해 영향을 받았으며, 국민이라는, 흙 아래 이승만 대통령과 김구 주석을 비롯한 수많은 독립운동가와 사상가, 정치인들의 기여로 대한민국이라는 꽃이 심어졌으며 국민들에 의해 관리되어 왔습니다. 우리는 이들을 존경해야하며, 그들에 대한 공정한 평가를 하여야 합니다. 중국처럼 "마오쩌뚱의 공과 실이 30과 70이다"로 결론지어놓고 정론화 하는 것이 아닌, 이승만을 독재자나, 국부가 아닌 하나의 인간으로, 김구를 반항아나 국부가 아닌 하나의 사람과 인간으로 객관적이게 평가하고, "대한민국 창립에 결정적인 공헌을 했던 한 한국인" 이라는 인식을 키워야 합니다. 무조건 국부라고 추앙해놓고 신격 존재로 신격화 시키거나, 친일파, 살인마, 극우광등의 굴레를 씌우고 봐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대한민국 건국의 주체를 국민들이라 인식하고, 대한민국 건국에 결정적인 역할을 했던 인물들을 존경하고, 그 사람들에 대한 객관적인 평가를 내려야 한다는 것이 정론입니다.
국가의 주인은 국민이다. 공화국은 역동적이다. 오늘도 건국되고 내일도 건국된다. 건국되지 않는 공화국은 페지된다.
일본의 계몽사상과 후쿠자와 유키치는 "일본에는 인민의 역사가 존재하지 않는다" 라고 이야기 했습니다. 대한민국은 일본과 달리 대한민국은 역사로서 민주주의는 위로부터, 또는 전쟁으로부터 온 것이 아닌 아래로부터 온다는 것을 증명했습니다. 4.19혁명으로 시작된 불길은 부마항쟁과 광주 민주화운동을 비롯한 민주화 운동과 국민의 투쟁은 대한민국이 공화국이라는 것을 증명했으며, 89년체제라는 것을 이루어 냈습니다. 즉 대한민국이라는 정치제제는 국민의 열망과 함께 수많은 독립투사와 정치가들의 협력으로 세워졌으나, 대한민국이 "민국"이라는 것을 증명했던 것은 국민들이었으며, 또 아래로부터 그것을 증명했다는 점, 그리고 국민의 안전과 재산, 생명을 지키지 못하는 정부가 국민의 선택에 의해서 폐기될수도 있다는 점을 증명했습니다. 1948년 선포되었던 대한민국은 비록 남한 단독의 정부이고 사회계약에 근거한 국가가 아니었지만, 국민으로 인해 자연권이 증명되고 사회 계약이 증명된 거꾸로 된 역사를 가지고 있다는 것이죠.
국민으로 등장한 개인은 그 국가가 자신의 생명, 자유, 재산을 보호해 줄 때 진정으로 나라 사랑의 마음을 가질 수 있을 것입니다. 이런 각도에서 볼 때 민주공화국임을 표방하고있는 일부 근대국가들이 실제로는 그 이념과는 거리가 멀다는 것을 쉽게 알 수 있죠. 그만큼 국가는 한번 만들어놓고 나면 끝나는 것이 아니라 분재에서 나무를 키우듯이 국민이 합심하여 애정을 갖고 지속적으로 관심을 갖고 가꾸어나가지 않으면 제대로 유지될 수 없다는 것을 명심했으면 합니다. 이런 면에서 대한민국이 창건된 이후 우리 국민이 대한민국을 건국하고, 지금고 건국하고 앞으로도 건국할 것임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미국은 조지 워싱턴이 건국한 것이 아닙니다. 프랑스도 그렇지 않고, 수많은 공화국들은 인민의 열망과 그 열망을 읽은 정치적 인물에 의해서 주도됩니다. 조지 워싱턴은 초대 대통령으로서 그것을 지휘했던 사람이고 그 주변에는 토머스 제퍼슨, 메디슨, 헤밀턴을 비롯한 사상가들이 있었습니다.우리는 그 인물에 대한 존경과 역사적 탐구를 하고 배워야 하는것은 당연하지만, 국부라는 단어로 이들에 대한 평가마저 거부해버리고, 대한민국 공화국의 설립 주체를 한 인물에 집중시키는 것은 전제주의적이고 반 공화주의적 발상이라는 것이 제 의견입니다. 마키아벨리가 말했듯이 공화국은 활기가 넘치고 오늘도 건국되고 내일도 건국될 만큼의 역동성이 있어야 하며, 언제나 쇠퇴하지 않고 개혁되고 무너지고, 또 다시 건국되는 국가가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중심에는 한국 국민들의 열망과 참여가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지금까지 대한민국을 건국해왔고 지금도 건국해가고 있으며, 앞으로도 건국하고 있습니다. 국민은 국가의 주인이며, 이 나라가 좋은 국가가 되는가는 바로 우리들에게 달려있지 조선처럼 왕에게 달려있지 않습니다. 우리가 건국했기에 우리의 운명은 우리가 스스로 결정해야 합니다. 우리 모두 주인의식을 가지고 사회를 알아가고 국가에 대한 올바른 이해를 가지는 것이야말로 우리나라가 강해지는 지름길이라는 것을 명심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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